소멸시효 지난 채권까지 거래, 채무자에겐 끝없는 상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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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시효 지난 채권까지 거래, 채무자에겐 끝없는 상환 공포

by eKHonomy 2012. 9. 9.

제윤경 | 에듀머니 이사


최근 서울시 자치구 공무원들의 대부업체 단속 과정에서 대부업체가 부실 채권시장에서 유통되는 카드 대출 채권을 사들인 뒤 수년이 지난 채무에 대해 추심을 한 사례가 확인됐다. 


다중 채무자들은 과거의 채권 추심 악몽 속에서 그 채권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채 당황한다. 추심행위 자체도 그들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추심의 정도는 은행보다 추심 전문업체가 더욱 노골적이고 추심 전문업체보다 대부업체가 더 지독한 경향이 있다. 대부업 대출을 쓴 적이 없음에도 ‘당신의 카드 채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말 앞에서 과거의 흔적이 대부업으로까지 흘러갔음에 당황함은 물론이고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부실 채권을 대부업자가 양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때문에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이다.


금융기관이 회수를 하지 못하는 채권을 추심회사와 대부업체 등에 매각을 하는데, 이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까지 거래가 되기도 한다. 결국 채권 소멸시효가 이미 지난 것임에도 갚아야만 한다는 대부업자의 지급 명령 압박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상당수의 채무자들은 애초에 채권에도 소멸시효가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실상 갚을 의무가 사라진다는 것을 모르고 채무 상환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이다. 결국 채무자로부터 공포심을 되살려 상환 의무가 사라진 빚을 갚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민법에서는 채권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이라도 채무자가 채무금의 일부를 변제하거나 이자를 지급하게 되면 소멸시효가 중단된다. 


한 마디로 채무자가 소멸시효에 대한 적법한 자기 권리를 알고 있지 못하면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을 갚게 되는 것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채무 불이행을 이행하고자 하는 선량한 행동으로 이해하면 그만이지만 당장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부당한 일이다. 


불법 대부업 피해자의 눈물 (출처: 경향DB)


대부업자는 그 채권을 헐 값에 샀음이 분명하다. 소멸시효까지 지난 채권을 제 값을 줬을 리는 없다. 결국 원금의 절반만 돌려 받아도 상당한 수익을 챙기게 된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공포심을 상기시킴은 물론이고 법을 몰라 대응하지 못한다는 허점을 이용해 재정적인 손실까지 입히는 셈이다.


추심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챙기는 짭짭할 수익은 공돈 벌이를 원하는 사람들을 부실 채권 시장으로 대거 끌어들이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올해 초 1600억원대 부실채권 다단계 투자사기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부실채권을 싼값에 매입한 뒤 회수율을 높이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달콤한 투자 수익에 대한 기대심 유발로 투자자들을 모았다. 피해자가 된 투자자들은 교수, 목사, 사업가, 회사원, 주부 등 다양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쫓아다닐 악몽일 수밖에 없는 채권 추심업으로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사기를 당했다니 참으로 서글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일단 부실채권 시장이 이렇게 난립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고 채무 당사자들이 거래 과정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채무자가 돈을 빌린 원죄를 갖고 있다고는 하나 갚아야 할 의무가 여기저기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옮겨 다닌다는 것은 잔인한 일임이 분명하다.


또한 채권 소멸시효에 대한 중지 요건들이 너무 불합리하다. 이미 채권 소멸시효가 지난 것에 대해 채무자에게 채권의 상태를 정확히 고지하지 않은 채 추심을 하는 행위는 전부 불법으로 간주해야 한다. 부채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채권 추심 시장의 난립이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내몰 것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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