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압축적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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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압축적 경제민주화

by eKHonomy 2012. 10. 10.

장상환 | 경상대 교수·경제학


 

경제민주화가 올해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의제로 등장했다. 재벌의 경제력이 너무 비대해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양극화가 경제침체를 몰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정치적 민주주의, 사회적 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의 순서를 밟았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군주제나 귀족과두제를 타파하고 보편적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확립한 것이라면 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사회보장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사회적 민주주의다.


 경제민주주의란 경제생활의 운영과정에서 노동자의 지배와 통제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기반으로 경제생활을 통제하는데 노동자도 단순히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경제생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생산·소비·투자·근로조건·기술 등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 예산의 편성과 지출에서 민중의 참여와 민주적 통제를 확립하는 것, 금융기관의 소유와 경영에서 노동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통제를 확립하는 것,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민주화하는 것,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것, 대외경제관계에서 공정한 무역과 투기자본에 대한 통제를 확립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시민사회단체 전태일 동상과 함께 경제 민주화 (경향신문DB)


경제민주주의는 작업장 민주주의, 산업민주주의를 포괄한다. 산업민주주의는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주주만이 아니라 노동자, 소비자, 공급자, 이웃 주민, 시민대표 등 이해당사자들에게도 주는 것으로 일터에서의 의사소통 확대로 산업분규를 감소시킨다. 서구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는 대공황을 거치면서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의 원인이 카네기, 모건 등 강도귀족(robber baron)에 경제력이 지나치게 집중되고, 산업자본이 금융자본과 유착되며, 노동자들의 권리가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재벌체제를 타파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 피라미드 주식소유를 사실상 금지하고, 금산분리 규제를 도입했고, 부당노동행위 처벌을 통해 노동조합을 보호했다. 그리고 사회보장법 제정을 소통해 소득재분배에 의한 사회보장체제를 확립했다.


2차대전 후 선진 자본주의 각국은 경제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 독일의 경우 ‘공동결정법’과 ‘경영조직법’(1952년)을 통해 경영참가와 공동결정제도가 도입됐다. 1976년 공동결정법 개정으로 공동결정의 범위가 확대되고 2000명 이상 고용 기업에 노동자대표 이사를 두고 공동결정을 하는 제도가 확립됐다. 


유럽 각국에서는 단체교섭의 범위를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고용정책, 자본투자, 생산계획, 신공장 건설 등으로까지 확대했다. 작업장 민주주의를 통해 노동의 의미를 이윤추구를 넘어 인간화했다. 노동자협의회 설치, 공동결정제 도입, 소득재분배 등이 이루어졌다. 미국에서는 도산하거나 경영난에 빠진 기업을 종업원들이 인수하는 등으로 종업원 주식 소유(ESOPs)가 발달했다. 


한국 자본주의는 압축적 성장을 하면서 아직 경제적 민주주의는커녕 사회적 민주주의조차 확립되지 못했다. 1987년 정치민주화를 계기로 노동조합이 합법적 지위를 얻긴 얻었지만 실질적으로 노동기본권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정리해고 등 경영상의 문제를 쟁의사유로 할 때 불법 파업으로 몰려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당하고, 업무방해죄로 형사상 처벌을 받고 있다. 집단적 노사문제를 노동법이 아니라 형법과 민법으로 다루는 것은 사실상 노동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 1997년 외환위기를 IMF 구제금융으로 해결하면서 케인스주의 복지국가를 생략한 채 신자유주의국가로 바로 전환했다. 그래서 복지체제 확립이 지난 총선과 다가올 대선의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한국은 압축적 경제성장으로 개도국의 선두주자가 됐다. 이제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과 독점 규제, 노동자 경영참가 등의 본래적 의미에서의 경제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미루어진 노동기본권 보장과 사회보장체제 확립이라는 사회적 민주주의도 실현해야 한다. 압축적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다가오는 대선을 계기로 사회경제 민주화에서도 개도국의 모범이 되는 것은 국민들의 어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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