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복합적인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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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경철 칼럼

[경제와 세상] 복합적인 탐욕

by eKHonomy 2011. 10. 20.

박경철|의사·경제평론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금융업이 스스로의 기여도에 합당한 잉여를 배분받고 있는가라는 점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윤활유 구실을 해야 하는 금융업이 지나치게 성장하면서 몸체인 실물을 흔들고 있다. 이로 인해 약화된 실물에서 빠져나간 잉여자원은 계속 금융업으로 집중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월가 점령 시위를 벌이던 한 젊은이가 낮잠을 청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 경향신문DB

그 결과 자동차공장에서 하루종일 작업하는 근로자와 컴퓨터 앞에 앉아 고객의 자금을 굴리며 일하는 근로자의 비정상적(여기서 정상의 범위가 어디인지는 논외로 하자)인 임금격차가 발생했고, 그 격차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와함께 금융뿐 아니라 실물분야에서도 현장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근로자와 기업의 경영을 담당하는 최고경영자(CEO)의 임금차이가 천문학적으로 벌어지면서, 과연 이러한 이익배분이 정당한 것인지, 이것이 공리적인 것인지의 질문과 분노가 쏟아지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시장자본주의 틀에서 정리한다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논쟁이 야기된다. 이를테면 현장 근로자가 하루종일 일해서 만들어 낸 생산성과 펀드매니저가 같은 시간에 벌어들인 수익의 규모가 다르므로, 그 수익력의 차이에 따른 대가일 뿐이라고 반박할 경우,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지금까지 CEO 전성시대와 금융자본주의를 거치면서 심정적으로는 부당하지만 제도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려운 시장의 맹점으로 작용해온 이유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거치며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쪽은 금융이었지만 위기는 모두에게 닥쳐왔고, 이 위기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퍼부으며 금융시스템을 회생시키자, 다시 금융업이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을 살린 재원은 납세자의 돈과 국가의 부채에서 나온 것이다. 이 납세자의 돈마저 실물현장 근로자들에 비해 실적급이나 스톡옵션 등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번 CEO나 금융가들이 더 적은 비율의 세금을 부담함으로써 조성된 것이기 때문에, 금융가의 책임을 피해자인 대중들이 지게 되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책임의 대상이 명확해지자 대중의 분노가 폭발해버린 것이 반월가 시위이다. 그렇다면 궁금증은 미국 등의 선진국처럼 신흥국에서도 같은 성격의 시위가 발생할 수 있을까라는 점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문제가 숨어있다. 선진국들과 달리 신흥국들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금융보다 실물이 우위에 있고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거나, 사실상 우월적 지위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IMF를 겪으면서 금융업에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긴 했지만, 그것은 사실상 산업자본과 정치권력의 탐욕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들의 문제는 산업자본의 문제와 금융업의 문제가 복합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만약 앞서 월가시위의 주요 의제인 ‘국가사회적 자원의 과도한 지원을 받은 곳은 어디이고, 그 대가를 가장 많이 누린 곳은 어디이고, 그것은 과연 정당한 수준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그 대답은 금융보다는 오히려 일부 대기업에 대한 문제제기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즉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의 문제는 단순히 금융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산업구조 전반의 문제이며 대기업 중심의 경제와 지원들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점들이 얽혀있는 것이다. 물론 금융업에 대한 문제제기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차제에 금융업에 대한 견제장치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경우 단순히 여의도 점령시위만이 아니라, 산업구조와 지배구조에 대한 반성과 고민이 함께 나와야 하는 것이다. 즉 월가 점령 시위가 우리나라로 쉽게 옮겨오지 않는 이유는, 선진국은 금융에 편중된 자원과 잉여배분의 문제이고, 우리나라는 수출대기업에 편중된 자원배분과 기회독점의 문제, 급성장한 금융의 문제가 합해짐으로써 전선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무게가 달라서가 아니라는 점을 꼭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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