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문제는 ‘공감’이다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박경철 칼럼

[경제와 세상] 문제는 ‘공감’이다

by eKHonomy 2011. 8. 25.
박경철 | 의사·경제평론가


남자들이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은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라는 지극히 마초적인 스티커다. 눈물은 곧 공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 남자는 최대한 공감력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도그마가 여기에 숨어있는 셈이다.

어쨌건 우리 사회에서 남자의 눈물, 그것도 공개석상에서 보이는 공인의 눈물은 드문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남자의 눈물도 아름다울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가 아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인 경우다. 눈물의 대상이 자기를 향할 때는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이 되지만, 타인을 대상으로 할 때는 커다란 공감의 파도를 몰고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자회견 도중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경향신문DB)



그 점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투표 전에 흘린 눈물은 그것이 자신의 운명적 결단이라는데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었기 때문에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그 눈물이 차별적 급식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나, 그 부모의 고통을 받아 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뜨거운 감동을 주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남자의 눈물이건 여자의 눈물이건, 공개석상에 보이는 공인의 눈물은 반드시 타인을 향한 것이어야 감동이 있는 셈이다.

결국 공감의 문제다. 공감(empathy)은 동정(sympathy)과 다르다. 동정은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이고 시혜적 성격을 가진다. 이를테면 한겨울의 육교 위에 웅크린 사람의 깡통에 던져지는 동전은 동정의 기호지만, 같은 동전이라도 무릎을 굽혀 깡통에 동전을 넣고 일어설 때의 동전은 공감의 기호인 것이다. 공감은 내가 그의 마음으로 그를 이해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공감 부재의 현장을 빈번하게 목격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말한 경영상의 긴급사유가 설령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경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우리 직원이 연이어 생목숨을 끊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이 느껴져야 정상이다. 사무실에서 키우는 화분이 하나 죽어도 마음이 불편하고 안타까운 것이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우리 직원의 죽음과 남겨진 그 가족의 고통에 눈물을 흘릴 수 없다면, ‘회사를 내 집처럼 근로자를 가족처럼’이라는 말은, 공감은커녕 밤하늘의 담배연기보다 공허한 헛된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정치인의 그것도 마찬가지다. 촛불을 든 대학생 앞에서 연설하는 정치인들의 구호가, 내 아이를 보는 마음의 바탕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들은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대상을 향한 연민이나, 다른 목적성을 가진 행동이라면 야유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아이를 안아들고 뺨에 입을 맞추는 정치인의 그것이나, 장애인 시설 등에 봉사를 나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그것, 혹은 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는 그것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농민이 입는 것을 입고 농민이 먹는 것을 먹고 농민 속으로 가자’라는 구호를 앞세웠던 러시아의 ‘브나로드’가 실패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비록 겉으로는 농민의 옷을 입고 농민의 음식을 먹었지만, 농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본 지식인들의 자세가 공감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 이것을 가리켜 악어의 눈물이라 부른다. 

그 점에서 보면 분노도 마찬가지다. 내 문제에 분노하면 이득이 없지만, 타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같이 분노하면, 언젠가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대신 분노해 준다. 즉 눈물도 타인을 향한 것만이 감동이 있고, 분노도 공분만이 의미가 있는 셈이다.

현재 당면과제인 가계부채 문제, 특히 저소득층의 부채 문제는 이런 공감의 바탕 위에서 보지 않는 한 파국은 피할 수 없다. 문제를 뒤로 미루며 시간을 끌면 점점 악화될 뿐이다. 차가운 녹색 피가 흐르는 경제는 에일리언의 경제다. 따뜻한 사람의 피가 흐르는 경제는 공감의 바탕 위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