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반값 등록금이 놓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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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반값 등록금이 놓치고 있는 것

by eKHonomy 2011. 6. 2.
박경철 | 의사·경제평론가 donodonsu@naver.com


대학등록금 문제가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생경한 모습이었던 대학생의 가두시위와 연행 소식이 다시 들려오고, 김제동, 김여진씨 등 시대를 고민하는 인기 연예인들까지 그들의 편에 서면서, 이 문제가 시대적 고민의 일부로 편입되는 모습이다.

경향신문DB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논리적 과제만이 아니다. 만약 이것을 논리 문제로만 보자면,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까지 세금을 내서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치졸한 논쟁부터, 누구의 눈물을 먼저 닦아야 할 것인가의 복지의 우선순위 논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고, 해법은 결국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선택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란의 와중에서 간과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학 정원의 문제다. 하버드, 예일 등 미국의 상위 10개 명문대학의 입학 정원을 모두 합하면 대개 1만명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입학 정원만 합해도 이 수준을 가볍게 넘는다. 극소수 대학의 교세 확장에 대한 탐욕이 전 국민적 고통을 유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우리도 선진국 대학과 같은 기준으로 SKY의 정원을 정한다면 극소수 우수인재를 제외하고는 그 관문을 넘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강남에서 사교육 자원을 동원하거나 과고, 외고 등 특목고를 졸업한다고 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반면 지금처럼 정원을 확대하고 대학의 규모를 학생 수로 과시하는 지금의 시스템을 계속 가져간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 도달할 수 있는 현실의 문제가 된다.

그 결과 기업은 SKY 출신만으로 핵심 인재를 충분히 조달할 수 있고, SKY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재선발의 일차 관문을 좁힐 수도 있으며, 나아가서는 한국사회의 모든 기회의 지점 역시 이들에 의해 장악될 수 있다. 소위 명문대학의 과도한 정원이 그들만의 강고한 이너서클을 구축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소위 SKY의 정원이 미국처럼 1000명 내외 수준으로 줄어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들 가운데 학문에 매진하거나, 연구에 종사할 인력을 제외하면, 사회일반에서 그들이 자신들만의 강한 연대를 구축하고 한국사회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역부족인 상황이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이 관문에 들어가기 위해 투쟁을 벌이는 수십만의 어린 학생들이 비정상적인 사교육에 대한 갈망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고, 교육의 목표가 새롭게 전환되어 사교육의 폐해와 인재양성 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의 기부금과 적립금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소수의 인재를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등록금이 아닌 기부금과 재정지원을 필요로 한다. 대학의 경영은 학생 등록금에서, 연구성과와 명예에 따른 기부금으로 중심이 이전되어야 하고, 이 경우에만 ‘하버드’와 같은 대학의 자산운용이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대학은, 학생의 머리수를 늘려 등록금 수입을 주 수입원으로 삼으면서도, 미국의 사례를 들어 기부금과 재정지원, 적립금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후자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전자를 포기해야 함에도 우리 대학은 두 개의 사과를 한 손에 쥐려는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문제를 외면하고 미봉책으로 넘어간다면, 설령 이번에 ‘반값 등록금’을 제도화하더라도 차후 재정적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 이 문제는 또 다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불운한 운명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근원적 해결은 소위 명문대학의 정원 축소를 통해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구축된 ‘그들만의 리그’, 소위 독과점 구조를 과감하게 깨뜨리는 데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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