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자본의 무서운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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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자본의 무서운 교만

by eKHonomy 2011. 6. 30.
박경철 | 의사·경제평론가


등록금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학생들이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피켓을 들고 나오면서 ‘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백과사전에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기본권의 하나로서 헌법상 보장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사회의 지배체제 내지 지배질서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소수의견의 표현행위에 대한 공권력의 간섭이나 제한을 배제하는 것이, 소수자의 인권과 이익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즉 집회결사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가 주장을 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수단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집회결사의 자유가 ‘절대 강자’에게도 동일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는 ‘소수’ 혹은 ‘약자’라는 보편적 기준이 모호하고 자칫하면 그것이 정치적 억압이나 약자에 대한 억압 수단으로 역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 회장단. (경향신문DB)


그 점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마찬가지다. 전경련은 재벌기업들이 대다수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사실상 ‘재벌기업의 이익집단’이지만 그들도 자신의 이익을 보호받을 헌법적 권리를 지닌다.

하지만 굴지의 재벌기업들이 이렇게 단체를 이루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본(게이단렌)과 우리나라 정도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에서는 ‘시장 자본주의’ 체제에서 ‘절대적 강자’인 대기업 집단이 끼리끼리 모여 조직을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은 법이 아닌 사회적 규범상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경영학을 공부했던 안철수 박사의 말을 빌리면, ‘실리콘 밸리의 오너출신 경영자들이 점심시간에 만나면 지역의 하수도 문제와 도로 포장 문제 등을 상의하고,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등을 논의한다’고 한다. 미국의 일반기업 경영자들도 지역사회공헌 문제에 대해 지역민들과 토론하거나 사회적 기여를 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드물게 집단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상속세 존치’나 ‘기부’와 같은 의제를 이슈화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물론 미국의 기업들도 로비스트를 고용해서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의회나 행정부에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내려는 행위들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공개적으로 단체를 결성하고 집단적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경련은 다르다. 더구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인세 인하’와 같은 이해적 주장을 하는 것을 넘어 ‘등록금 문제’나 ‘복지’와 같은 사회적 아젠다에 대해 ‘포퓰리즘’ 등의 정치적 용어를 동원하며 개입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발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자본이 권력을 접수했다”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방향성을 자본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무서운 교만마저 엿보인다. 

한국의 재벌그룹들이 ‘시장만능의 시대’를 넘어 ‘자본지배의 시대’를 꿈꾸지 않는 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발언들이 여과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지금 부산의 한진중공업에는 생존권을 주장하는 근로자들의 죽음 뒤에 고공 크레인에 매달린 절규가 이어지고 있고, 평택의 쌍용자동차 근로자들은 속속 생목숨을 끊으며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이내 묻혀버리고 누구도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존귀한 회장님들의 출퇴근 여부와 편법증여로 경영권을 세습받은 그 자녀들이 어떤 패션 감각을 뽐냈는지는 그 날의 핫이슈가 되고 있는 세상이다.

이 와중에 전경련 회장의 발언이 집회결사의 자유에 근거한 소수 약자의 항변이라고 받아들일 국민은 없다. 국가와 국민은 자본이 지도편달을 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법률상의 문제가 아닌 규범상의 윤리로 전경련은 스스로 해체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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