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부자와 빈자의 돈에 대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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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부자와 빈자의 돈에 대한 욕망

by eKHonomy 2011. 5. 5.
박경철 | 의사·경제평론가 donodonsu@naver.com


부산저축은행 대주주들이 고객의 돈을 사금고처럼 이용하며 무분별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을 병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그 사건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단죄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를 무수하게 목도해 왔는데, 수십조원을 가진 재벌가가 증여세와 상속세를 면탈하기 위해 물의를 일으키거나, 소득세를 탈루하고 기업의 자금을 유용해서 개인의 잇속을 차리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재벌, 한없는 욕심은 결국 재앙으로

이쯤에서 우리는 ‘그 정도의 부를 축적한 사람이 왜 더 많은 부를 욕심내는 것일까?’라는 철학적인 의문을 한번쯤 가져보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이에 대해 ‘부 그 자체가 아닌 성과에 대한 욕구’라고 설명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답이다. 부자가 더 많은 부를 욕망하는 것은 ‘화폐의 추상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돈은 ‘노동가치를 축적하는 수단’이고 언제든지 재화로 교환될 수 있는 유동성이다. 물론 여기서 노동가치설의 맹점을 지적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어쨌거나 돈은 노동을 저장하고, 저장된 노동은 인간이 필요에 따라 일 대신, 문화나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때 저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노동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그 반대의 사유, 즉 돈을 노동가치로 환원하는 것에는 상당히 서툴다.

이를테면 마늘밭에서 나온 100억원은 5만원권 지폐로 20만장이고, 어느 재벌가의 일원이 가진 1조원은 5만원권 2000만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보유한 부를 이렇게 환원해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만약 이만한 돈을 재화로 보유하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1조원의 부는 라면 20억개, 우유 10억ℓ에 해당한다. 이렇게 생각할 경우 그가 세금 100억원(라면 2000만개)을 아끼기 위해 탈세를 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다시말해 큰 부자가 단순히 계좌상의 숫자나 장부상의 기호가 아닌 실제 화폐나 재화로 부를 가지고 있다면, 일정 수준 이상 돈이 늘어나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돈은 단지 숫자로만 표현된다. 숫자로 보면 1조원의 돈은 단지 12개의 ‘0’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화폐의 추상성은 상대적 결핍감을 유발한다. 내가 가진 1조원은 다른 이가 가진 13개의 ‘0’에 비해 초라하고, 또 다른 14개의 ‘0’에 비하면 아쉽기 그지 없는 숫자인 것이다.


 

경향신문DB




서민들은 생존 위한 처절한 욕구

재화로 환원해서 생각해 볼 때,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이 화폐나 재화로 바뀔 가능성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돈을 추상화된 숫자로 보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 돈의 본질인 셈이다.

이와 반대로 빈자가 가진 돈은 처절하다. 그가 가진 돈은 기본적으로 화폐로 바꾸거나 재화로 바꾸기에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빈자의 돈은 항상 재화로 환원돼 사용되어야 하므로. 그가 가진 부에 대한 열망은 기본적으로 생존욕구와 거의 일치하게 된다.

전자의 욕망이 상대적 욕망이라면, 후자의 욕망은 절대적 욕망인 셈이다. 이렇게 부에 대한 같은 욕망이지만 절대적, 상대적인 본질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에도 인간은 원래 ‘욕망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더 많은 부를 추구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의 전제,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우리를 모두 탈인간적인 함정에 빠지게 하고 만다.

결국 빈자의 절대적 욕망은 탈진한 여행자가 사막에서 만난 한 방울의 이슬이지만, 부자의 상대적 욕망은 소금물을 들이켜는 하마와 같은 것임에도 이것을 동일선상에서 맥락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 혹은 시장자본주의의 두 얼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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