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 공정한 하도급 거래관계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위평량의 경세유표

공정한 사회, 공정한 하도급 거래관계

by eKHonomy 2010. 9. 15.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공정사회 구현을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인들과의 만남에서 특히 “상생도 제도를 아무리 만들고 규정을 바꾸어도 제도와 규정만 가지고 할 수 없다"며 "그런 관점에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보도됐습니다.
굳이 법과 제도와 규정을 만들지 않고서도 관계자들의 신속한 인식 변화를 통해 대중소기업 간 문제가 해결된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지요.

지난 7월 말. 7개 정부부처 공동 중소기업조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거래 상의 불공정한 관행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정부 스스로는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근본적인 법제도 개선은 뒷전인 채로 10여 년 이상 동어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와 재계는 중소기업이 기술력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강조해 왔고, 여러 가지 지원책을 구사했습니다. 그리고 큰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그 원인을 중소기업에게 전가하곤 합니다.

그러나 지원책의 성과가 미흡한 것은 중소기업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공정한 시장 틀을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지난 8년간 주요 산업을 대상으로 중소 하도급 기업의 경영성과 지표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사실들이 발견됩니다.

즉, 성장성, 활동성, 생산성 등에서 중소하도급기업들이 대기업보다 오히려 우월한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중소 하도급 기업들도 열악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수익성은 대기업 원사업자보다 열악하지요. 그런데 수익성은 상위 대기업에 의해 좌우되는 납품단가 책정, 원자재가격 반영 미흡 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즉 현재의 불공정한 하도급거래 관행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도급거래 구조의 불공정성을 제거할 때 중소하도급기업의 수익성이 호전되고 R&D투자도 증가할 것입니다. 중소 하도급 기업의 인력난과 자금난을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요.

중소기업의 독자적 성장과 경쟁력의 확보, 또한 생존의 토대를 소멸시키지 않고, 경제체질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법은 앞서 대통령께서 언급한 공정한 사회, 공정한 시장, 공정한 하도급거래구조를 정착시키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법제도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합니다. 인식의 변화보다는 법제도 개혁이 더 신속하고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공정거래법을 고쳐 공정위가 남용하는 전속고발권제도를 일부 폐지하고, 하도급법을 개정해 3배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두 법제도는 제3자에게 주어진 권한을 피해 당사자에게 돌려줌으로써 시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입니다. 또한 피해 당사자에게 실질적인 배상을 하는 경제적 유인체계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도급거래상의 불공정한 행태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의 협상력(negotiation power)을 대폭 키워주는 일입니다.

대중소 기업 사이의 모든 문제는 경제력 차이에서 비롯된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산업 및 업종별로 유사한 지위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협동조합 등의 단체를 결성하여 거래조건을 협상하는 것을 ‘부당 공동행위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고, 그런 단체가 납품단가 관련 분쟁조정 신청 당사자가 되는 걸 허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8년 말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 협동조합 조직화율은 제조업기준 9.5% 수준에 불과한 반면, 2005년 일본은 70%에 달합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2005년 EU법을 수용하면서 경쟁제한금지법(GWB)의 기존 카르텔 조항을 모두 폐지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공동행위(Mittelstandskartelle)에 대해서는 유일하게 카르텔 적용 제외 조항으로 남겨뒀습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게 된 일본과 독일의 중소기업 관련 제도는 중소기업들을 무조건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규모가 큰 대기업들과의 거래에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도급 거래구조가 비슷한 한국과 일본의 협동조합 활성화 차이, 독일의 중소기업 카르텔 정책과 우리나라의 정책 차이가 오늘날 한국의 중소기업과 세계 최강의 중소기업을 가르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이처럼, 정부가 중소기업이 산업의 토대라는 일관된 인식을 가지고 법제도를 고치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경영성과가 더 우월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도 대중소기업의 양극화, 중소기업의 쇠퇴를 현상적으로만 파악하기보다는 그 밑바닥의 거래구조와 관행에서 불공정한 행태를 개혁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재계와 정부는 대중소기업 간의 협력적 거래관계 구축, 동반성장, 법제도 보다는 인식의 변화 등을 주문하고 시장논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추진해온 정부 정책들이 성공했다면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304만개에 이르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인식변화만 바라고 있을 한가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