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간 합의는 지켜져야 함에도 여당과의 2차례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야당의 행보를 젊은 세대가 본받을까 걱정스럽다. 경제·민생 관련 법안의 조기처리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고, 장외투쟁을 일삼는 정치권에 대한 추석 후 민심은 급기야 국회무용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파기되는 일이 정치권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당초 2017년으로 예정된 외환·하나은행 조기통합 논의로 외환은행 노조의 반대가 거세다. 하나지주 입장에서는 저금리 기조하에서 외환은행 직원의 1인당 인건비가 하나은행보다 2000만원이 높고 수익구조도 나빠 조만간 외환은행의 경영상 위기까지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합병 이후 이루어질 공동전산망투자도 지연되어 ICT(정보통신융합기술)를 이용한 비대면 영업확대전략에도 차질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금년 말로 예정된 외환카드부문과 하나SK카드의 합병 시 필요한 은행과 연계된 통합전산망 구축이 필요하고, 중복부서 및 지점 통폐합 등 공동경비감축이 이루어질 경우 연간 3000억원의 시너지효과 발생도 예상된다. 3년이면 1조원에 가까운 돈이다. 가뜩이나 거액을 주고 인수한 은행인데 투자원금의 조기회수가 시급하다. 물론 외환 및 기업금융에 강점을 지닌 외환은행과 소매금융 및 PB부문에 강점을 지닌 하나은행이 조기통합되면 기존의 대규모 지주사 실적을 상회하는 실적도 기대된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은 신뢰를 핵심자산으로 하는 금융의 본질가치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은행이 조기통합의 당위성으로 꺼내든 논거는 외환은행 인수 이후 악화된 재무상태를 들고 있다. 그러나 2013년도는 전 은행 공통적으로 저금리 기조로 인한 이자이익의 감소 및 부실기업과 관련된 대손비용의 증가 등으로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53.7% 감소했다. 따라서 외환은행 인수가 그 이유가 될 수 없다. 더욱이 2014년 상반기 경영실적 비율을 보면 외환은행 실적이 하나은행을 능가한다. 즉 2분기 중 하나은행의 총자산수익률은 전 분기 대비 하락한 반면, 외환은행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순이자마진(NIM)도 하나은행의 경우 은행 평균치를 하회하는 1.5%에 그치고 있는 반면, 외환은행은 2.04%에 달하고 있다. 이 밖에 예수금 증가율 및 부실여신 비율도 외환은행이 보다 더 양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인도네시아 현지 통합법인인 KEB-Hana의 통합본사 영업부 내부 (출처 : 경향DB)
은행은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과 지속적인 금융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 비가 올 때도 우산을 뺏지 않는 은행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경영상황이 당초의 합의를 무시해야 할 정도의 급박하지 않을 경우 강박에 의해 임직원들을 조기통합 분위기로 몰아가는 모습은 바람직한 대형금융그룹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다. 눈앞의 단기적 이익에 몰입해 조변석개식 대응보다는 원칙을 준수하고 정도경영을 함으로써 평판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기통합 방침의 대외적 발표에 앞서 내부적으로 직원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 개발이 먼저다. 우선 10%에 불과한 비이자수익을 여타경쟁국 은행의 40%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괜히 설익은 조기합병 논의로 노조와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당분간 두 은행을 그룹 내 쌍두마차로 키워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과거 신한은행이 조흥은행과의 합병 시 취한 조치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대신 남은 시간 동안 우수인력 유출 및 충성고객 이탈을 막기 위한 준비에 몰입해야 한다. 요즈음 <명량>이라는 영화에 우리 사회의 저명인사를 포함한 14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관람만 하면 무엇 하나? 서로 간에 소통과 울림이 없는 주장은 공허하고 불신풍조만 조장할 뿐이다.
문종진 | 명지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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