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협력은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발전과 빈곤퇴치를 돕는 공공부문의 활동을 의미한다. 흔히 ODA라고 알려진 공적개발원조는 개발협력의 중요한 일부이다. 개발협력은 부국이 빈국을 도움으로써 상생의 길을 열어가고자 하는 선한 동기를 가진 행위로 지구촌을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빛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발협력은 자선적 기부와는 다르다. 개발협력의 주된 재원이 공여국 국민의 세금이고 수혜 대상이 타국 국민이므로 공여국 정부는 개발협력의 당위성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협력의 목적과 방향성 그리고 효과적 시행전략과 투명한 시행절차가 갖추어져야 한다. 이러한 목적의식과 합목적적인 체계가 부재한 상태의 개발협력은 공여국과 수원국 양측의 권력층과 정부에 부패의 온상을 제공하는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의 주요 사례 중 하나가 미얀마 K타운 사업과 같은 760억원 규모의 ODA 사업을 활용하려는 시도였다는 것과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관련 대사급 인사에까지 개입하였다는 여러 보도들은 이러한 개발협력의 그림자가 이미 한국에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한국은 작년 11월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으로서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한 지 6년을 넘긴 신생공여국이다. 이에 한국 개발협력체계의 제도적 설계에 대한 논의가 부단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건강한 현상이다. 하지만 현재 논의가 한국 개발협력의 목적과 방향성 그리고 이를 실현할 전략 등의 실질적 내용이 아닌 ‘원조분절성’ 원조부처 행정조직개편과 같은 형식적 측면에 관한 주제에 편중되어 있는 것은 우려된다. 분절화로 인한 비효율적 원조집행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다수의 원조시행기관이 있다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 원조분절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투명하고 효과적인 조정기제가 있다면 중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원조전달을 방지할 수 있다. 오히려 다양한 시행기관이 전문성에 의한 분업을 한다면 개발협력의 효과성은 제고될 것이다. 또한 분권화된 개발협력 거버넌스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것과 같은 ODA 비리를 예방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현 한국 개발협력 거버넌스의 근본적인 문제는 투명하고 효과적인 조정기제의 미비와 분화된 시행기관 내 충분한 전문적 역량이 축적되어 있지 않아 효과적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 있다. 이는 단순히 행정조직을 개편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개도국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분야와 방법은 무엇이고 그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즉 개발협력의 목적과 전략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각 시행기관의 분야별 개발협력 전문역량 축적이 본질적인 문제이다. 이를 망각한 채 유·무상 원조분절화와 원조 행정조직 등 형식적 이슈에 시선을 맞추게 하는 일각의 논의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게 할까 저어된다.
우리는 제국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서구공여국과는 달리 현 개도국이 처한 제반 제약조건을 극복하고 경이로운 경제개발과 사회개발을 이룬 발전경험과 동시에 그로부터 발생한 여러 부작용을 해결해야 하는 현안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 개도국과 공감할 수 있다. 이에 한국은 국제개발협력에 빛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개발협력사회는 형식논리와 조직 이기주의를 버리고 한국 개발협력체계를 세우기 위한 본질적이고 진지한 토론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선진공여국들은 자국의 비교우위와 역사적 배경과 경제·정치적 여건에 맞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개발협력체계를 형성시켜왔다. 우리도 우리의 여건에 적합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은 한국의 발전경험과 개도국의 개발제약조건에 대한 이해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개발정책과 제도에 관한 ‘지식협력’은 한국 개발협력의 비교우위를 창출할 수 있고 기존의 기술협력과 금융협력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으며 두 기능의 분업을 통한 개발효과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정혁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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