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하청업체 기술 빼돌리는 게 대기업의 상생경영인가
본문 바로가기
온라인 경제칼럼

[사설]하청업체 기술 빼돌리는 게 대기업의 상생경영인가

by eKHonomy 2015. 5. 27.

국내 대표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LG화학이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도둑질하는 ‘갑질’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LG가 그동안 정도 경영과 고객 감동을 앞세우며 누구보다 상생을 강조해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실망감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공정위 발표를 보면 LG화학의 하도급업체 다루는 방식은 대기업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치졸하고 비열했다. LG화학은 배터리 라벨 제조 관련 특허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의 납품을 받으면서 중국 내 합작공장 설립을 제안하고 23차례에 걸쳐 기술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협상 조건이 맞지 않아 합작이 틀어지자 해당 기업과 거래를 끊고 확보한 기술자료를 토대로 중국 자회사에서 배터리 라벨을 만들었다. 이 회사는 종업원이 7명에 불과한데도 기술특허를 상당수 갖고 있는 벤처기업이지만 LG화학의 갑질로 결국 해당 사업을 접었다. LG화학 측은 “배터리 라벨 기술은 특허가치가 적은 범용기술”이라며 떳떳함을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해당 기업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디지털 인쇄방식을 사용해 배터리 라벨을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색한 변명이다.

LG화학은 회로기판을 납품하는 또 다른 중소기업에는 이익률이 높다는 점을 내세워 납품단가를 20%나 깎고 이를 소급 적용까지 해 하도급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LG화학이 최근 충북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열면서 벤처 육성과 특허기술 제공을 약속한 게 진심인지 되묻고 싶을 지경이다. 국내 대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갈취해 제 것인 양 물건을 만들어내고,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깎는 상황에서 동반성장은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공정위에 적발된 LG화학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 (출처 : 경향DB)


대기업의 갑질로 중소기업이 치명적 손실을 입었는데도 솜방이만도 못한 처벌로 끝낸 공정위의 처분 역시 납득하기 힘들다. 공정위는 LG화학의 기술자료 갈취 행위에 1600만원, 하도급 대금 부당 감액에 3400만원 등 총 5000만원의 과징금만 부과했다. 법 위반 기간이 짧고, 위반된 하도급 대금 규모가 적어 과징금 액수도 적었다고 말하지만 지나친 형식논리다. 공정위는 기업 규제완화를 얘기하면서 사후규제를 강조하고 있다. 사후규제는 문제가 생기면 회사 문을 닫게 할 정도로 엄격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지 않는다면 갑질은 근절되지 않는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