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류동민 칼럼'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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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류동민 칼럼47

연말정산을 설명하는 몇 가지 이론들 어느 전직 고위관료가 몇천만원에 이르는 예상치 못한 세금을 내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나, 어쨌든 절치부심한 그가 정권이 바뀌어 복귀하자마자 한 일은 바로 그 세금을 없애는 것이었다고 한다. 종합부동산세 얘기다. 100% 사실일 리야 없지만 그럴듯하기는 하다. 남달리 일찍 연말정산시스템에 접속하여 금액을 확인하고 나니,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속삭이는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이성은 ‘세금폭탄’이라는 생활인으로서의 정서적 반응 앞에서 맥을 못 춘다. 이 비현실적인 금액이 정말 맞는 거냐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거의 민란 수준’이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마르크스는 어디에선가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장난 같은 이 .. 2015. 1. 21.
상상된 경제와 우울한 과학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 불렀다. 책 제목이기도 한 원어를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inities)’가 된다. 민족이라는 것이 어떤 실체가 아니라 그저 다른 이념, 이를테면 파시즘이나 국가주의 등에 활용되는 부차적 이데올로기이자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어려서부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임을 믿도록 배워 온 한국인들로서는 거부감이 들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자유나 민주라는 말이 그러하듯 민족도 다 같은 민족은 아니어서 정치적 입장이나 계급적 기반에 따라 제각기 편리한 대로 끌어다 쓰는 형편임을 감안하면, 더욱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미의 개념을 가진 이들을 철저하게 짓밟음으로써 권력을 지켜온 역사를 감안하면.. 2014. 12. 24.
능력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언제 대학입시가 조용하게 넘어간 적이 있겠느냐만, 올해는 수학능력시험의 변별력 논란에다 연이은 출제 오류마저 겹치면서 마침내 대통령까지 한마디 할 지경에 이르렀다. 촘촘한 학벌 사다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순수한 학력’에 따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 그 따름정리로서 결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정답’을 가진 문제로만 진검승부를 겨루어야 한다는 강박. 이 두 가지의 기묘한 결합이 몇 십 년 동안 진화해온 결과일 것이다. 먼저 변별력의 문제. 오랜 기간 반복학습에 사교육까지 거친 수십만명의 학생들을 통계학 교과서에서나 보는 아름다운 정규분포로 줄 세우겠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전국에서 몇백등 하는 학생과 몇천등 하는 학생은 적어도 그 시점에서의 학업성취도에 관한 한.. 2014. 11. 26.
익숙한 것과의 결별 몇년 만에 이사했다. 성냥갑처럼 비슷비슷한 대도시 아파트 생활에서도 일상의 변화가 때로는 깨달음을 가져다주곤 한다. 사실 가장 큰 깨달음은 이삿짐을 날라준 노동자 중의 한 분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에서 왔다. 그분의 지인이 최근에 장기융자까지 얻어 샀다는 집값이, 정말 부끄럽게도, 내가 생각하던 집값의 몇 분의 일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쓴 책에 달린 인터넷 서평에서 “저자는 높은 연봉에 평생 연금까지 보장된 철밥통의 국립대 교수이니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소감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내 기분은 참으로 묘한 것이었는데, 글쓴이가 짐작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한 연봉이 실제로 내가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과대평가된 내 벌이가 나에 대한 비판의 소도구로 쓰일 때 .. 2014. 10. 29.
개비 담배의 경제학 역 광장 한쪽 구석, 문명의 세계로부터 내몰린 흡연자들 몇이 각자 먼 산만 바라보며 급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초라한 행색을 한 사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가와 담배 하나를 얻으려 시도하다가 두어 번 거절당하더니 돌아선다. 불러서 하나 줄까 싶은 마음도 잠깐, 흘깃거리며 쳐다보는 노숙자들 걱정에 귀찮아져서 그만둔다. 문득 얼마 전 서울의 어느 멀쩡한(!) 동네 뒷골목에서 개비 담배를 파는 것을 보고 추억에 젖었던 생각이 든다. 스무 개비가 든 담배 한 갑을 쪼개어 하나씩 팔 때, 개비당 가격은 당연히 비싸진다. 한때 재미삼아 계산해본 개비 담배의 마진율은 60%에 이르렀다. 어느 세미나장에서 (그 역시 흡연자인) 선배 교수가 개비 담배가 가난한 이들과 중독자들을 착취하는 수단이라고 농담조로 말하는 것을.. 2014. 10. 1.
경제 살리기와 성장 강박 집 앞 버스정류장에 있는 빵집이 문을 닫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는 동네 빵집 몰락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바게트’였다.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다”며 예고한 날이 훨씬 지나도록 텅 빈 진열장만 쓸쓸하다. 2년 사이에 두 번째로 문을 닫았으니 세명째 주인이 바뀔 모양이다. 어느 한적한 농촌 마을, 노인 몇이 모여 장기나 화투판을 벌이고 있음직한 복덕방 하나 크기도 채 안되는 그 작은 빵집에서 두 명의 자영업자가 망했거나 최소한 기대했던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하고 떠난 셈이다. 사실 우연한 기회에 그 빵집의 월 임대료가 얼마인지를 전해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도대체 하루에 몇 명의 손님이 찾아와서 한 명당 얼마만큼의 빵을 사야 할지,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소리 한번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숫기.. 2014. 9. 3.
무당의 굿판을 넘어 때때로 경제라는 것은 고유의 논리를 가지고 있어 자기 마음대로 굴러가는 것인데, 경제학자나 정치가들이 이런저런 말로 이름 붙여 부르면서 각자의 취향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정치인의 이름에다 이코노믹스를 합성해 만든 ‘○○노믹스’의 시리즈를 볼 때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시리즈 중 기억에 남는 최초의 것은 레이거노믹스인데, 한때 한국의 경제학 교과서에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공급중시경제학이 그것이다. “세율을 인하하면 오히려 세수가 증가한다”는 직관에 어긋나는 주장이 그 핵심 내용 중 하나인데, 세월이 지난 뒤 레이건의 정치적 후계자 격인 부시 2세조차 “무당경제학(voodoo economics)”이라며 부정한 바 있다. 지난 정권 초기, 어느 경제 관련 토론회에.. 2014. 8. 6.
‘초록물고기’의 슬픈 꿈 라는 영화를 생각한다.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발견하고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순박한 청년 막둥이(한석규 분)는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여인(심혜진 분) 때문에 뜻하지 않게 폭력조직에 몸을 담게 되고, 보스(문성근 분)를 위해서라면 그저 순박한 “악으로 깡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을 바친다. 보스의 옛 보스를 살해하고 공중전화부스에서 집으로 울먹이며 전화하는 장면, 바로 그 유명한 의 장국영 신에 대한 오마주였다. 그리고 막둥이는 죽임을 당한다. 그의 “그녀”는 다름 아닌 보스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막둥이네 식구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밥을 먹고 떠나는 보스와 여인. 이 영화가 1997년 작품이라는 사실은 새삼스럽다. 그 시절 풋풋했던(?) 스스로를 회상하며 젖어오던 상.. 2014. 7. 9.
경제학자들에게 보내는 격문 애덤 스미스는 에서 동업자들은 친목을 위해 모이더라도 항상 음모와 술수로 끝을 맺는다는 식의 얘기를 한 바 있다. 굳이 그래서는 아니지만, 가능하면 동업자인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은 삼가왔다. 누워서 침 뱉기일 수 있으므로. 그런데 오늘은 작정하고 경제학자들, 특히 한국의 경제학자들을 비판하고자 한다. 경제학은 인접 사회과학에 비해서도 좌파건 우파건 기본적으로 자유경쟁을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일까? 서울 시내에 캠퍼스가 있는, 요컨대 우리가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경쟁 하나는 잘 통과해서(한국에서 그것은 시험을 잘 친다는 것과 동의어이며,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공부를 잘한다”는 것과는 동의어가 아니다.) 그 자리까지 온 사람들이다. 아버지 ‘.. 2014.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