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기자메모'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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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칼럼, 기자메모99

모범답안을 넘어 미국에서 손꼽히는 기술기업 ‘텔레다인’을 창업한 헨리 싱글턴(1916~1999)은 별난 천재였다. 눈 감고 두는 체스를 즐기는 뛰어난 수학자였고 요즘도 항공기나 미사일을 목적지까지 유도하는 ‘관성항법장치’를 1950년대에 개발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1960년 시작한 기업을 30년간 운영하면서 연평균 수익률 20.4%를 거뒀는데, 이는 시장 평균 수익률의 12배에 달한다. 시장의 고정관념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을 꺼리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실적이다. ‘자사주 매입’이 그랬다. 1972년 그는 텔레다인이 보유현금은 많고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이 서자 이후 10여년에 걸쳐 자사주를 90%나 사들였다. 월스트리트의 입방아에 오르기 딱 좋은 결정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자사주 매입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허약.. 2020. 3. 17.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문득 2009년 신종플루 기억이 났다. 당시는 집에 유치원생이 있었기에 불안감이 지금보다 더 컸다. 그러던 어느 날 ‘구세주’가 손에 들려 있었다. 어렵사리 구한 타미플루다. 항간에는 짝퉁들도 판을 쳤다던데 글쎄…. 어쨌든 이걸 서랍에 넣어두니 부적처럼 든든했다. 코로나19가 누그러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공포심이 팽배해 있다. 주가도, 유가도 집어삼키며 세계 경제까지 감염시킬 태세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기 전에 우리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었을까.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선 전자전시회 CES 2020이 열렸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같은 이젠 낯설지도 않은 낱말들이 인류의 미래라고 그려졌다. 어떤 이들은 집값, 주식, 명품 등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 이런 욕망들을 비웃듯 코로나19가 뒤통.. 2020. 3. 12.
수치 오류가 부풀린 ‘공정위 성과’ 정부는 지난 22일 배포한 ‘공정경제 성과모음집’에서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로 하도급업체들이 미지급 대금 384억원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공정위가 자진 시정을 유도해 지급 조치한 하도급 대금이 2017년(148억원)·2018년(227억원)에 이어 지난해도 늘면서 관련 대책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에게 해당 공정위 자료를 입수해 분석해 보니 지난해 지급조치됐다는 미지급 대금 384억3900만원은 수치 오류로 인해 부풀려진 결과였다. 현대중공업이 실제 지급한 대금액 2044만4000원이 1000배인 204억4400만원으로 반영돼 있던 것이다. 실제 금액으로 계산하면 총 대금지급액은 180억1600만원이다. 정부가 밝힌 성과액보.. 2020. 1. 31.
지금이라도 집 사야 할까요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나요?” 건설·부동산을 담당한다는 이유로 종종 듣는 질문이다. 정부 정책만 믿고 전셋집을 전전했는데 서울 집값이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소연하는 지인부터 신혼집을 전세로 얻어야 하는지 무리해서라도 대출을 받아 자가로 마련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후배까지. 사연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 심리에는 공통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내집마련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안이 깔려있다. 모아놓은 돈이 많으면 이렇게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출규제가 강화됐다지만, 서울에 내집마련을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든 뭐든 해도 안전하겠냐는 속내가 이 질문에는 담겨있다. 내 입장에서는 덜컥 사라고 했다가 집값이 떨어져도 낭패고, 괜히 사지 말라고 했다가 집값이 계속 올라도 난감한 노.. 2020. 1. 16.
일자찢기 잘하는 방법 운동을 열심히 하는 후배가 새해 소원이 ‘다리 일자찢기’라며 요령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다리를 180도 양옆이나 앞뒤로 펴는 스트레칭은 자기 관절을 자유자재로 쓰는 무술인이나 무용가처럼 멋있어 보이는 데다 꾸준히 하면 코어근육이 단단해지고 오장육부 순환이 원활해지는 건강상 이점도 있다. 하지만 속성으로 익힐 요령이랄 만한 게 별로 없으니 해준 말이라곤 이것뿐이었다. “그냥 하면 돼.” 취미로 발레를 5년간 배우면서 숱한 회원들의 다리찢기를 봐왔지만 늘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유연성을 타고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생님이 등을 눌러 배를 바닥에 붙이는 순간 ‘악!’ 하며 비명이 터진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이의 낯빛은 마치 치과의자에 누워 이가 뽑히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두려움으로 그늘진다. 대뇌변연계.. 2019. 12. 24.
포용이 아닌 포괄성장이 필요하다 지난 3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구하고 있는 ‘포용적 성장’과 방향이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더 적극적인 재정지출과 더 강력한 공정경제를 위한 정책을 제언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은 ‘포용성장’의 선도국가이자 OECD의 모범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OECD가 강조하는 ‘포용성장’의 내용 가운데 한국 정부가 시민들에게 잘 알리지도 않고 제대로 실현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인 ‘노동’을 더 강력하게 조직화하고 위상을 강화하는 노력이다. 기획재정부가 2012년 OECD가 추구하는 ‘인클루시브 그로스(inclusive growth)’를 ‘포용성장’으로 번역했을 때부터 예견된, 혹은 의도된.. 2019. 12. 5.
[기자칼럼]국일고시원 화재, 그 후 1년 “바뀐 거요? 전혀요. 희망을 안 가지는 게 편해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날 이후 자신은 서울 종로를 떠나 은평구 다가구주택에 자리를 잡았지만, 상당수 피해자들은 다시 인근 고시원으로 옮겼을 것이라는 이야기 끝에 나온 말이었다. 그는 지난해 20명 가까운 사상자를 냈던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 탈출 생존자 ㄱ씨다. 지난해 이맘때였다. 모두가 잠들어 있던 새벽, 고시원 3층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출입구에 인접한 객실에서 불이 난 탓에 3층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 이곳에 살던 이들 대부분은 40대 이상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당시 사고 소식을 전하는 사진기사에는 불에 그을린 고시원 간판 옆으로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함께 찍혀 있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나의 관.. 2019. 11. 14.
감독 당국 무시하는 제주항공의 ‘비겁한 변명’ 제주항공이 31일 자신들의 ‘공포의 회항’ 전말을 다룬 경향신문 보도를 정면 반박했다. 이날자 1면 ‘제주항공 ‘공포의 회항’ 원인은 “SW 8개 먹통” ’과 3면 ‘제주항공 여객기, SW ‘상당수 먹통’인데 왜 즉시 회항 않고 수동비행 추진했나’ 등이 잘못된 보도란 것이다. 해당 보도는 복수의 국토교통부 당국자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25일 김해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회항사건 조사를 책임진 인물들이다. 그런데 제주항공은 반박문에서 “국토부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으로 현재까지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므로 ‘국토부에 따르면’ ‘당국에 따르면’이라는 용어는 ‘국토부 관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정확하게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건엔 초동 조사 또는 초동 수사란 게 있다. 이 내용을 관계 당.. 2019. 11. 1.
임대주택의 배신, 우리의 무관심 셔터가 내려진 대형서점 앞. 노숙인들이 종이상자로 각자의 집을 만들어 잠을 청한다. 누구는 종이상자로 몸 주변을 바람막이처럼 둘렀고, 또 누구는 종이상자를 겹쳐 1인용 매트리스를 만들었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서울 종각역에서 마주하는 모습이다. 가까운 친구에게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몇 달 전이었다. 음식점 창업에 실패한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40평대 아파트까지 잃게 된 처지였다. 친구는 세 아이와 함께 살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보고 있다며 자격 요건과 지원 내용을 물었다. 공공임대주택은 두 장면이 오묘하게 겹쳐지는 단어다. 거리를 떠도는 가난한 이들은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지 않는 걸까,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평범한 삶을 살다 벼랑 끝에 몰린 친구는 살 만한 집.. 2019. 10. 17.